* 이 글이 읽으시기 전에 참고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한 마디를 드리면 저는 토의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밑에 나온 의견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 배려하며 의견을 공유하는 성숙한 태도를 가진 저와 댓글을 다는 모든 분이 되길 원합니다.
스치듯독서 4주차 모임!
오늘은 지대넓얕 2권 중에서 진리, 철학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느낀 점들이 J양, C군은 재밌다 흥미진진하다고 하였는데 이 친구들은 철학적인 생각들을 많이 해오던 친구들이였습니다. L양은 재미없다고는 하였지만 칸트의 인간중심적인 생각을 좋아했습니다. 제 생각은 기독교적인 마인드로 보면 이러한 철학은 필요없고 절대주의가 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희 스치독은 세상 속에서 기독교인들이 어떠한 철학적인 태도를 가져야 할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여러 이슈들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먼저 진리를 이야기하면 C군은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과학을 맹신하고, 많은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철학에 대한 맹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식과 상식이 가장 올바르고 최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를 비판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은 사회적 통념 즉,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진실이라고 생각하며 자세한 맥락과 본질을 알려고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러한 의견에 J양과 저는 동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통념을 이야기하면서 첫 주제로 사회적 에티켓들이 과연 의무일까? 선택일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 번째 문제는 버스에서 두 자리가 있는 경우 먼저 앉는 사람이 안쪽 자리에 앉는 것이 매너인가? 꼭 그것을 매너라고 생각해야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래서 제 의견은 결국에 똑같이 돈을 내면서 타는데 먼저 탄 사람이 먼저 선택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먼저 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쪽으로 들어가는게 불편하다고해서 비켜줘야 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대중교통안에서 백팩을 매는 방법에 대한 논쟁이다. 왜 사람들은 이것을 매너라고 생각을 할까? L양은 자신이 버스에서 백팩으로 얼굴을 맞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예화를 들어 이야기하면 결국에 같이 돈내고타는데 왜 나는 백팩에 얼굴을 맞아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백팩에 대한 매너라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음 내용은 지하철의 임산부석에 대한 이야기이다. 임산부석에 임산부가 앉아있지 않고 비어있다면 사람들이 앉아도 되는가? 아니면 비워둬야 하는가?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왜 자리가 비어있는데 그 자리에 앉으면 안되는 것인가? 임산부가 오면 비켜주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난 남자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임산부가 와도 비켜주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앉으면 안된다라는 반대의견도 이해가 간다. 그래도 내가 내 돈내고 타는데 왜 앉으면 안되는가라는 생각을 한다. 오면 당연히 비켜줄건데... 그리고 임산부석에 남자가 앉아 있는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냐... 솔직히 말해서 임산부가 없는데 앉아도 되는거 아닌가? 임산부석에 여자만 앉아야 하는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차별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논리로 노약자석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도덕적 판단의 잣대로 남을 판단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진리일까? 우리가 맞다고 생각하는 모든 지식들이 정답일까? 그것은 모르는 것이다. 언제든지 사회적인 통념은 변한다. 왜 통념이 절대적으로 맞다고 맹신하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철학적인 사고를 하려면 이러한 생각들은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여러가지 사회 문제들이 있는데 사람들은 통념에 의해서 자신이 생각을 깊게 해보지도 않고 마녀사냥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은 철학적인 사고를 통해서 답을 얻고 마녀사냥식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공격하는 행위들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에 이러한 이야기를 쓰게 된 이유는 현대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생각을 안하고 그냥 일에 치여서 바쁘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준이나 통념에 의해서 판단하고 마녀사냥한다.
이제 두 번째 주제다. 우리들이 나눈 이야기는 넌크리스찬들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포스트 모더니즘에 많이 영향을 받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과거에 개인들을 억압하는 모든 틀을 깨려는 생각들이다. 하지만, C군이 교회를 다니게 된 과정을 통해서 넌크리스찬들이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야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C군은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이 왜 살아야하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철학적인 생각을 많이 하였다. 그리고 이 친구는 과학만능주의였고,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갔다. 이 친구가 성장하면 할수록 고민은 많아졌고, 어느 순간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한다고 해서 자신의 인생의 방향, 그리고 어느 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세상의 진리는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그 깨달음의 계기 된 것이 성경이였다. 성경에서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말해주지 않는 진리들을 말해준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자체를 판타지 소설 속에 나오는 내용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철학적인 사고를 하며 내 삶의 이유를 찾아가다보면서 생기는 철학적 사고에 의한 의문들은 성경의 내용으로 채우면 답이 한 방에 나온다.
세 번째 주제이다. 개인의 행복과 관련된 것인데 개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L양은 칸트를 이야기하며 인간의 간접의무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물론 인간에게는 절대적인 선택권한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다움을 위한 태도가 필요한데 그것이 생명존중과도 이어진다. 하지만 C군은 생명존중 대상의 분류에 대한 큰 틀로 넘어가서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과연 우리들은 생명존중의 대상을 어디까지로 봐야할까? 인간? 동물? 식물? 무생물? 나는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와 판단기준으로 다른 것들을 판단한다. 이러한 태도는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태도이다.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마인드로 논쟁을 하면 결국에 우리들은 타협점을 찾을 수가 없다. 우리들은 이기적인 태도를 버려야한다. 그렇기에 나는 판단하는 것이 답이 아닌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겸손한 태도로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함부로 남을 판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한다. 어쨌든 개고기를 먹는 것은 옳다 그르다가 없는 것이다. 우리들은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태도를 가져야한다. 개고기에 대한 논쟁거리는 많다. 너무 사람들이 맛있게 먹기위해서 동물들을 잔인하게 죽인다는 것. 도축과정이 비위생적이다. 개는 교감하며 키우는 것이지 먹는 것이 아니다 등이 있는데 이러한 의견들은 결국 자신의 의견일뿐이라는 것이다.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을 옳지가 않다.
너무 길어서 나눠서 쓸게요!
다음 포스팅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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